서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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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기

서필의 아들로 강직함을 나타내는 일화

왕이 몰래 절에 가서 놀아서는 안 된다.

성종 2년(983년) 좌승(佐丞)을 거쳐 병관어사(兵官御事)가 되었다. 왕을 따라 서경(지금 평양)에 갔을 때, 성종이 몰래 영명사에 가서 놀고자 하자 서희가 왕에게 글을 올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간하니 마침내 중지하고 도리어 안장과 말을 상으로 내리시고 뒤에 내사시랑(內史侍郞)으로 승진시켰다.

임금이 신하의 막사에 들어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서희가 일찍이 임금을 호위하고 해주에 갔을 때 성종이 서희 막사로 와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이 때 서희는 "신의 막사는 임금께서 오실 만한 곳이 못됩니다"라고 했으며, 또 술을 올리라고 명령하니 "신의 술은 드릴만한 것이 못됩니다" 하였다. 성종은 마침내 막사 밖에 앉아서 어주(御酒)를 올리도록 하여 함께 마시고 돌아갔다.

옳은 말 하는데는 관직의 높낮이가 없다.

공빈령(供賓令) 정우현(鄭又玄)이 7가지 바르게 다스려야 할 일을 논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임금의 뜻을 거슬렀다.성종이 재상들을 불러 의논하기를 "정우현이 감히 직책을 벗어난 일을 논했으니 벌을 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자 모두 “명령대로 하겠습니다"고 하였으나, 서희는 "옛날에는 간하는데는 관직이 없었는데 직책을 벗어났다(越職)는 것이 무슨 죄 입니까? 신이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재상 자리에 잘 못 앉아 있으면서 지위를 훔치고 헛되이 녹만 먹고 있기 때문에 직분이 낮은 자가 정사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신의 죄입니다. 더군다나 정우현이 논하는 일은 대단히 적절한 것이니 상을 주어 장려해야 마땅합니다"고 말했다. 성종은 크게 깨달아 정우현을 감찰어사로 뽑고 서희에게는 수놓은 안장과 궁전 안에서 기르는 말, 그리고 술과 과실을 내려 위로하고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에 임명하였다.

장위공 서희의 생애

942년 (고려 태조 25년)

내의령을 지낸 서필의 둘째 아들로 이천에서 출생

960년 (고려 광종 11년)

문과 (갑과) 급제

961년 ~ 971년

광평원외랑을 거쳐 내의시랑에 제수

972년 ~ 982년 (성종 1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국교를 트고, 검교병부상서의 벼슬을 받음

983년 (성종 2년)

병관어사로 제수

993년 (성종 12년)

거란 내침 시 중군사로 북계에 출전.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통해 거란 대군을 철수시킴

994년 (성종 13년)

평장사로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을 축출. 장흥진, 곽주 등지에서 축성

995년 (성종 14년)

안의진 등지에 축성. 선주 등지에 성보를 쌓아 청천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국토를 완전히 회복 (강동 6주 축성)

996 ~ 997년

태보내사령에 오름

998년 (목종 1년)

신병으로 개국사에서 임종

1027년 (현종 18년)

성종의 묘정에 배향

1451년 (조선 문종 1)

숭의전에 배향

1564년 (명종 19)

이천 설봉서원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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